엑스포는 오후 6시까지였고, 내가 행사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가 이미 지난 뒤였다. 수월하게 입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였다. 행사장 입구에 구불구불,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휴대폰으로 저 뒤에 걸린 사진을 찍거나, 새삼스럽게 초대장과 리플렛을 들여다보거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넌 정말 안 올 거니?”라고 묻곤 했다. 다들 비슷한 모양새였다. 나 역시 새삼스럽게 리플렛을 읽기 시작했다.

이 행사의 주최는 화장품 러쉬(LUSH)였다. 영국의 화장품 브랜드인 러쉬는 창립 단계부터 동물실험을 하지 않으며 동물실험을 거친 원료조차 거래하지 않는 노선을 고수해왔다. 이 행사는 러쉬의 제품 홍보와 관련된 것은 아니고, 화장품 동물실험의 실태와 폐해를 알리고 윤리적 소비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역시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 코레스(KORRES), 동물보호시민연대 카라(KARA), 여성환경연대, 성실화랑, 채드윅 송도 국제학교가 행사에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행사에 참여하는 또 한 축의 사람들이 지금 여기 줄 지어 서 있는 것이다. 정해진 인원만 조금씩 입장시키기 때문에 줄은 금방 줄어들지는 않았다. 20분쯤 기다렸을 때,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입구에서 종이로 만든 토끼 가면을 건네주었다. 왜 토끼냐고? 그 가면을 쓴 다음에 듣게 된 사실, 토끼는 화장품 실험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동물이었다. 순하고, 체구가 작고, 개체수가 많아서.

나는 어떤 일을 설명할 때 쥐를 이용한 실험결과를 종종 인용한다. 이를테면 같은 크기의 공간에 쥐가 세 마리, 열 마리, 스무 마리 있을 때 쥐들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사실과 같은 것. 쥐가 세 마리 있을 때 그중 한 마리가 죽으면 다른 쥐들은 어떤 형태로든 반응을 보이지만, 열 마리 중 한 마리가 죽으면 조금 더 무뎌지고, 스무 마리나 서른 마리 중 한 마리가 죽으면 이제 쥐들은 마치 자기 자신의 죽음에도 반응하지 않을 것처럼 무감각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쥐 실험을 통해 도심의 인구밀도와 폭력성, 무관심을 연결지어보는 것인데, 지금 이 순간 ‘동물실험’ 이란 주제를 떠올려보면 이 역시 수많은 쥐 속의 한 마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너무 자극이 많은 나머지, 이 한 마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이다.

내게 동물실험은 그렇게 자주 인용하던 사례들처럼 흔한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동물실험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다. TV 뉴스 화면에서 어떤 의약품을 개발했다는 소식과 함께 흰 쥐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별 거부감 없이 봤고, 그 장면이 내가 알고 있는 동물실험의 전부였다.

쥐가 연구원의 장갑 낀 손에 들려 주사를 맞을 때 그 쥐가 가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 그 쥐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건 최근의 일이었다. 그 쥐들이 오로지 실험용으로 키워지고, 실험이 끝난 후에는 버려진다는 것, 죽음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쥐에서 시작된 관심은 점점 확대되었다. 지구상에서 한 해에 얼마나 많은 실험동물이 쓰이는지에 대해 찾아보다가 어리둥절해졌다. 신문, 책 어떤 경로로든 찾으면 찾을수록, 내가 찾아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실험동물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번식하는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2억 마리였다가 3억 마리, 마침내는 연간 약 5억 마리의 동물이 실험동물로 쓰인다는 결과를 찾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실험동물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서 현재는 약 500만∼600만 마리에 이르렀다. 이런 실험동물들은 야생에서 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대량사육을 한다. 한국이 세계 아홉째 규모의 실험동물생산국가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실험실의 동물들은 낯설지 않다. 쥐·기니피그·햄스터·고양이·돼지·토끼·새·원숭이에 이르기까지, 흔한 개체 수 만큼 친밀한 동물들이다. 애니메이션 <스누피>의 모델이 되었던 개 비글은 워낙 사람을 잘 따르는 성향 때문에 실험견 1순위다. 실험대 위에서도 낯선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믿기 때문이다.